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杂谈 |
1.한국의 묘제와 창녕 교동 고분군(韩国的墓制与昌宁校[jiao]东古墓群)
(1.)묘제의 종류와 의미
묘제의 종류는 세계적으로 지역과 인종에 따라 다양한 장제가 채택되어져 왔다. 아울러 묘제는 보수적이면서도 해당 종족의 전통이 비교적 잘 간직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의 전통이나 생활풍습의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무덤의 종류와 형식: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 왔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였다. 이러한 공동체의 일원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주검의 처리방법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에 대한 어떤 기념비적 형태로써 무덤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은 구성원의 사체 처리의 방법은 기후와 생활환경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풍장(風葬) : 사체를 바위나 나무 위에 얹어놓음으로서 금수(禽獸)에게 처리를 맡긴다.
수장(水葬) : 해안이나 강변에서 물속에 사체를 가라앉힘으로서 물고기에게 처치를 맡긴다.
화장(火葬) : 열대 지방에서 급속히 진행되는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해 불로 태워서 처리하는 방식.
무덤은 그러한 사체 처리의 한 방법으로서 땅을 파고 묻는 매장의 결과이다. 이러한 습관은 인류가 동물의 생활과 다름이 없었던 시대에는 단순한 사체처리의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으나, 차츰 인간적 지성과 감성이 열리게 되면서부터 단순한 사체처리에 어떤 기념비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던 것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매장에 의한 무덤의 형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하는 문제는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전기구석기시대(前期舊石器時代)로 추론하고 있으며, 고고학적인 조사에 의한 확인을 통한 결과 동양에서 최고의 매장에 의한 무덤의 흔적은 후기구석기시대(後期舊石器時代)로 나타났다.
(2.)무덤의 유형
무덤은 그 형태나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봉분의 형태에 따른 분류 : 방형분(方形墳), 원형분(圓形墳), 쌍분(雙墳),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2.) 봉분의 재료에 따른 분류 : 토장묘(土葬墓), 지석묘(支石墓), 적석총(赤石 ), 석총(石塚), 토총(土塚), 전축분(塼築墳)
3.) 유구의 재료에 따른 분류 : 석관묘(石棺墓), 석곽묘(石槨墓), 목관묘(木棺墓), 옹관묘(甕棺墓), 도관묘(陶棺묘(墓))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무덤 양식, 즉 묘제는 석관묘, 지석묘, 토광묘(土壙墓), 옹관묘 등이 있으며, 보통 이 중 석관묘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2.)창녕 교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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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술정리 석탑(述亭里石塔)
(1.)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종
지 정 일
소 재 지
시
탑이 세워져 있는 창녕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곳이며, 진흥왕 때부터 신라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탑은 2단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민가의 담 밑으로 하층기단의 일부가 들어가 있었으나, 1965年 주위에 있던 민가들을 철거하여 정화 보존 조치를 취하였고 탑도 함께 해체해서 수리하였다. 이때 3층 탑신의 상면의 방형사리공에서 청동향로형용기, 황색, 유리제, 사리병, 사리, 7립, 향편, 유리소주 등의 사리장치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복원시 사리는 다시 스테인레스용기에 넣어 탑내에 보관되었으며 다른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탑을 동탑이라 하는 것은, 한 사찰내에 쌍탑이 건립된 때문이 아니라 행정구역상 술정리 내에 2기의 석탑이 존재하는 이유로 붙여진 명칭이며, 서 삼층석탑은 약 1㎞ 떨어진 곳에 있다.
기단에는 위·아래층 모두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한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 간결한 모습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당시 3층 몸돌에서 뚜껑달린 청동잔형사리용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바닥돌 주위에 돌림돌을 놓았던 구조도 밝혀졌다.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한 비율로 줄어드는 몸돌로 인해 충분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부적인 수법도 정교하여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과 비길만한 기품이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신라 영역에 속해있던 창녕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볼 때, 경주 중심의 탑 건립 경향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2.)술정리 서삼층석탑
종
지정일 1970. 6.24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309-1
시
술정리 서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309-1번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5.1m이고,1970년 6월 24일 보물 제520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원래 술정리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과 함께 있었으나 그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으며 같은 절터의 쌍탑이 아닌 별개의 탑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나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볼 때, 동삼층석탑보다 다소 떨어지며 조성시기도 훨씬 뒤지는 것으로 보인다.
2중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 삼층석탑으로 신라 전형양식을 따랐으나 기단의 구성에 특이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한데 붙여서 만든 8매의 석재를 조합한 것인데, 양쪽 모서리에 우주(모서리기둥)를 모각한 석재 4매를 네 귀에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탱주(받침기둥) 2주씩을 모각한 중간석 4매를 끼운 것이다.
두툼한 갑석은 지대석과 마찬가지로 8매의 판석으로 되었으며, 윗면은 거의 수평이고 2단의 굄을 높게 조각하였다.
상층기단의 면석 역시 8매의 석재로 구성하였기 때문에 면마다 중간에 작은 판석을 1장씩 끼웠으며 우주를 모각하지 않고 2구식안상을 4면에 조각한 것이 특이한 수법이다.
지금 남면에는 중간에 끼운 장방형의 중간석 표면에 거친 문짝모양이 오목새김되어 있는데 후대에 작업된 것으로 짐작된다. 또, 동면의 중간석은 2단이며, 북면의 그것은 2열로 갈라져 있으나 이것 역시 후대의 보수로 보여진다.
상층기단의 갑석은 4등분된 두툼한 판석을 얹은 것인데, 처마는 짧고 두꺼우며 윗면은 거의 수평이고 2단의 모난 굄을 높게 조각하여 탑신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은 각 층의 옥신과 옥개를 따로 만든 것인데, 옥신에는 우주를 모각한 것 이외에 다른 조식이 없으나 2, 3층이 적당한 비율로 감축되어 안정감이 충분하다.
옥개석은 밑에 5단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나 길이가 짧아서 받침 1단의 넓이와 대차가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지붕의 곡면이나 네 귀의 반전이 약간 두드러져서 중후한 느낌의 옥개가 된 것 같다. 전각의 좌우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2개씩 남아 있다.
상륜부는 우주와 갑석형을 모각한 네모진 노반(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 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이 탑은 기단의 결구와 조식에 특이한 수법을 구사하였으나 정연한 규율성을 잃지 않았다. 탑신부가 약간 중후한 느낌이 있으나 그 체감률이나 기단과의 균형은 대체로 무난한 편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특징은 술정리동삼층석탑에 비하여 그 조성연대의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좋은 대조가 되고 있다.
이 탑도 원래 소속되었던 절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남쪽 200m 거리에 영지라는 작은 못이 있어, 이 절터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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