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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文学作品:霧津纪行

(2013-03-10 23:19:09)
标签:

教育

分类: 韩国语文学作品及赏析


http://s6/mw690/629e2b35gd79389566a05&690



무진 기행

 

 

 

 김 승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font>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 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킬로 남았군요."

 

 "한 삼십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아니 그렇지 않은 지도 모른다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 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데드롱직()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로 갈아탄 이래나는 그들이 시골사람들답지 않게 앉은 목소리로 점잔을 빼면서 얘기하는 것을 반수면(半睡眠)상태 속에서 듣고 있었다버스 안의 좌석들은 많이 비어 있었다그 시찰원들의 대화에 의하면 농번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할 틈 이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께 없지요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그것은 안개다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안개는 마치 이승에 ()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해가 떠오르고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안개무진의 안개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사람들로 하여금 해를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버스의 덜커덩거림이 좀 덜해졌다버스의 덜커덩거림이 더하고 덜하는 것을 나는 턱으로 느끼고 있었다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있었으므로 버스가 자갈이 깔린 시골길을 달려오고 있는 동안 내 턱은 버스가 껑충거리는데 따라서 함께 덜그럭거리고 있었다턱이 덜그럭거릴 정도로 몸에서 힘 을 빼고 버스를 타고 있으면긴 장해서 버스를 타고 있을 때보다 피로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열려진 차창으로 들어와서 나의 밖으로 드러난 살 갗을 사정없이 간지럽히고 불어가는 유월의 바람이 나를 반수면 상태로 끌어넣었기 때문에 나는 힘을 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粒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그 바람 속에는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低溫),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그리고 해풍(海風)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地上)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동시에 무진이 가까웠다는 것이 더욱 실감되었다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없이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아니 무진에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다.

 

 "당신 안색이 아주 나빠져서 큰일났어요어머님의 산소에 다녀온 다는 핑계를 대고 무진에 며칠 동안 계시다가 오세요주주총회에서의 일은 아버지하고 저하고 다 꾸며 놓을께요당신 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그리고 돌아와 보면 대회생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되어 있을 게 아니에요?"

 

라고 며칠 전날밤아내가 나의 파자마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진심에서 나온 권유를 했을 때도가기 싫은 심부름을 억지로 갈 때 아이들이 불평을 하듯이 내가 몇 마디 입안엣 소리로 투덜댄 것도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었다.

 

 내가 좀 나이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 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 할 때였었다새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 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었다

 

나의 무진에 대한 연상의 대부분은 나를 돌봐 주고 있는 노인들에 대하여 신경질을 부리던 것과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不眠)을 쫓아 보려고 행하던 수음(手淫)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거나 그것들에 관련된 어떤 행위들이었었다물론 그것들만 연상되었던 것은 아니다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고 나의 청각이 문득 외부로 향하면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소음에 비틀거릴 때거나밤늦게 신당동(新堂洞집앞의 포장된 골목을 자동차로 올라갈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잔디로 덮인 방죽이 시오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 나가 있고작은 숲이 있고다리가 많고골목이 많고흙담이 많고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바닷가에서 주워 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대로 만든 와상(臥床)이 밤거리에 나앉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문득 한적(閑寂)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靑年)이었다.

 

 그렇다고 무진에의 연상이 꼬리처럼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는 것은 아니다차라리 나의 어둡던 세월이 일단 지나가 버린 지금은 나는 거의 항상 무진을 잊고 있었던 편이다어젯저녁 서울역에서 기차를 탈 때에도물론 전송 나온 아내와 회사 직원 몇 사람에게 일러둘 말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정신이 쏠려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하여튼 나는 무진에 대한 그 어두운 기억들이 그다지 실감나게 되살아 오지는 않았다그런데 오늘 이른 아침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역구내(驛構內)를 빠져 나올 때 내가 본 한 미친 여자가 그 어두운 기억들을 홱 잡아 끌어당겨서 내 앞에 던져 주었다그 미친 여자는 나일론의 치마 저고리를 맵시 있게 입고 있었고 팔에는 시절에 맞추어 고른 듯한 핸드백도 걸치고 있었다얼굴도 예쁜 편이고 화장이 화려했다그 여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쉬임없이 굴리고 있는 눈동자와 그 여자를 에워싸고 서서 선 하품을 하며 그 여자를 놀려대고 있는 구두닦이 아이들 때문이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돌아 버렸대."

 

 "아냐남자한테서 채여서야."

 

 "저 여자 미국말도 참 잘한다물어 볼까?"

 

 아이들은 그런 얘기를 높은 목소리로 하고 있었다좀 나이가 든 여드름쟁이 구두닦이 하나는 그 여자의 젖가슴을 손가락으로 집적거렸고 그럴 때마다 그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그 여자의 비명이옛날 내가 무진의 골방 속에서 쓴 일기의 한 구절을 문득 생각 나게 한 것이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였다6.25사변으로 대학의 강의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 는 마지막 기차를 놓친 나는 서울에서 무진까지의 천여 (千餘里)길을 발가락이 몇 번이고 부르터 지도록 걸어서 내려왔고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고 의용군의 징발도 그후의 국군의 징병도 모두 기피해 버리고 있었었다내가 졸업한 무진의 중학교의 상급반 학생들이 무명지(無名指)에 붕대를 감고 <</font>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을 부르며 읍 광장에 서 있는 추럭들로 행진해가 서 그 추럭들에 올라타고 일선으로 떠날 때도 나는 골방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의 행진이 집앞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대학이 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을 때도 나는 무진의 골방 속에 숨어 있었다모두가 나의 홀어머님 때문이었다모두가 전쟁터로 몰려갈 때 나는 내 어머니에게 몰려서 골방 속에 숨어서 수음을 하고 있었다이웃집 젊은이의 전사 통지가 오면 어머니는 내가 무사한 것을 기뻐했고이따금 일선의 친구에게서 군사우편이 오기라도 하면 나 몰래 그것을 찢어 버리곤 하였었다내가 골방보다는 전선을 택하고 싶어해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무렵에 쓴 나의 일기장들은 그후에 태워 버려서 지금은 없지만모두가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汚辱)을 웃으며 견디는 내용들이었다<</font>어머니혹시 제가 지금 미친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원인들 때문일테니 그 점에 유의하셔서 저를 치료해 보십시오.이러한 일기를 쓰던 때를이른 아침 역구내에서 본 미친 여자가 내 앞으로 끌어당겨주었던 것이다무진이 가까웠다는 것을 나는 그 미친 여자를 통하여 느꼈고 그리고 방금 지나친 먼지를 둘러쓰고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이정비를 통하여 실감했다.

 

 "이번에 자네가 전무가 되는 건 틀림없는 거구그러니 자네 한 일주일 동안 시골에 내려가서 긴장을 풀고 푹 쉬었다가 오게전무님이 되면 책임이 더 무거워질 테니 말야." 아내와 장인 영감은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퍽 영리한 권유를 내게 한 셈이었다내가 긴장을 풀어 버릴 수 있는아니 풀어 버릴 수밖에 없는 곳을 무진으로 정해준 것은 대단히 영리한 짓이었다버스는 무진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기와 지붕들도 양철 지붕들도 초가 지붕들도 유월 하순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어디선지 분뇨(糞尿)냄새가 새어 들어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 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끝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우뚱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다니고 있었다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햇볕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꿇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볕 속에서정적 속에서 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조금 전에 나는 낮잠에서 깨어나서 신문 지국(新聞支局)들이 몰려 있는 거리로 갔다이모님 댁에서는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 않았다그렇지만 신문은도회인이 누구나 그렇듯이 이제 내 생활의 일부로서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맡아보고 있었던 것이다내가 찾아간 신문 지국에 나는 이모님 댁의 주소와 약도를 그려 주고 나왔다밖으로 나올 때 나는 내 등뒤에서 지국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끼리 무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애거만하게 생겼는데…."

 

 "…출세했다지?"

 

 "…옛날…폐병…"

 

 그런 속삭임속에서나는 밖으로 나오면서 은근히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결국 <</font>안녕히 가십시오>는 나오지 않고 말았다그것이 서울과의 차이점이었다그들은 이제 점점 수군거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으리라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면서나중에 그 소용돌이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자기들이 느낄 공허감도 모른다는 듯이 수군거리고 또 수군거리고 있으리라

 

 바다가 있는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몇 시간 전에 버스에서 내릴 때보다 거리는 많이 번잡해졌다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그들은 책가방이 주체스러운 모양인지 그것을 뱅뱅 돌리기도 하며 어깨 너머로 넘겨 들기도 하며 두손으로 껴안기도 하며 혀끝에 침으로써 방울을 만들어서 그것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날리곤 했다학교 선생들과 사무소의 직원들도 달그락거리는 빈 도시락을 들고 축 늘어져서 지나가고 있었다그러자 나는 이 모든 것이 장난처럼 생각되었다

 

학교에 다닌다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무소에 출근했다가 퇴근한다는 이 모든 것이 실없는 장난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려서 낑낑댄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이모댁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있을 나는 방문을 받았다()이라고 하는 무진중학교의 내 몇 해 후배였다한 때 독서광(讀書狂)이었던 나를 그 후배는 무척 존경하는 눈치였다그 는 학생 시대에 이른바 문학소년이었던 것이다미국의 작가인 핏제랄드를 좋아한다고 하는 그 후 배는 그러나 핏제랄드의 팬답지 않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하였고 그리고 가난하였다

 

 "신문 지국에 있는 제 친구에게서 내려오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웬일이십니까?" 그는 정말 반가워해 주었다.

 

 "무진엔 왜 내가 못 올 덴가?"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내 말투가 마음에 거슬렸다.

 

 "너무 오랫동안 오시지 않았으니까 그러는거죠제가 군대에서 막 제대했을 때 오시고 이번 이 처음이시니까 벌써…."

 

 "벌써 한 4년 되는군."

 

 4년 전 나는내가 경리(經理)의 일을 보고 있던 제약회사가 좀더 큰 다른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무진으로 내려왔던 것이다아니 단지 일자리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을 떠났던 것은 아니다동거하고 있던 ()만 그대로 내 곁에 있어 주었던들 실의(失意)의 무진행은 없었으리라.

 

 "결혼하셨다더군요?"

 

 박이 물었다.

 

 "흐응자넨?"

 

 "전 아직좋은 데로 장가드셨다고들 하더군요."

 

 "그래자넨 왜 여태 결혼하지 않고 있나자네 금년에 어떻게 되지?"

 

 "스물아홉입니다."

 

 "스물아홉이라아홉 수가 원래 사납다고 하데만금년엔 어떻게 해보지 그래?"

 

 "글쎄요."

 

 박은 소년처럼 머리를 긁었다4년 전이니까 그해의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었고희가 내 곁에서 달아나 버릴 무렵에 지금 아내의 전남편이 죽었던 것이다

 

 "무슨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죠?"

 

 옛날의 내 무진행의 내용을 다소 알고 있는 박은 그렇게 물었다.

 

 "아마 승진이 될 모양인데 며칠 휴가를 얻었지."

 

 "잘 되셨군요해방 후의 무진중학 출신 중에선 형님이 제일 출세 하셨다고들 하고 있어요."

 

 "내가?"

 

 나는 웃었다.

 

 "형님하고 형님 동기(同期)중에서 조형(趙兄)하고요." "조라니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애 말인가?"

 

 "그 형이 재 작년엔가 고등고시에 패스해서 지금 여기 세무서장으로 있거든요."

 

 "그래?"

 

 "모르셨어요?"

 

 "서로 소식이 별로 없었지그애가 옛날엔 여기 세무서에서 직원으로 있었지아마?"

 

 ""

 

 "그거 잘됐군오늘 저녁엔 그 친구에게나 가볼까?"

 

 친구 조는 키가 작았고 살결이 검은 편이었다그래서 키가 크고 살결이 창백한 나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내게 곧잘 했었다<</font>옛날에 손금이 나쁘다고 판단 받은 소년이 있었다그 소년은 자기의 손톱으로 손바닥에 좋은 손금을 파가며 열심히 일했다드디어 그 소년은 성공해서 잘살았다.> 조는 이런 얘기에 가장 감격하는 친구였다.

 

 "자넨 요즘 뭘하고 있나?"

 

 내가 박에게 물었다박은 얼굴을 붉히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그것이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좋지 않아책 읽을 여유가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가난 잡지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네무얼 가르치고 있나?"

 

 후배는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까보다는 조금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잘했어학교측에서 보면 자네 같은 선생을 구하기도 힘들 거야."

 

 "그렇지도 않아요사범대학 출신들 때문에 교원 자격 고시 합격증 가지고 견디기가 힘들어요."

 

 "그게 또 그런가?"

 

 박은 아무말 없이 씁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술 한잔씩을 마시고 나서 세무 서장이 된 조의 집을 향하여 갔다거리는 어두컴컴했다다리를 건널 때 나는 냇가의 나무들이 어슴푸레하게 물 속에 비춰 있는 것을 보았다옛날 언젠가역시 이 다리를 밤중에 건너면서 나는 이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는 나무들을 저주했었다금방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 듯한 모습으로 나무들은 서 있었던 것이다세상에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모든게 여전하군."

 

 내가 말했다.

 

 "그럴까요?"

 

 후배가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조의 응접실에는 손님들이 네 사람 있었다나의 손을 아프도록 쥐고 흔들고 있는 조의 얼굴이 옛날보다 윤택해지고 살결도 많이 하얘진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어서 자리로 앉아라이거 원 누추해서… 빨리 마누랄 얻어야겠는데…."

 

 그러나 방은 결코 누추하지 않았다

 

 "아니 아직 결혼 안했나?"

 

 내가 물었다.

 

 "법률책 좀 붙들고 앉아 있었더니 그렇게 돼 버렸어어서 앉아." 나는 먼저 온 손님들에게 소개되었다세 사람은 남자로서 세무서 직원들이었고 한 사람은 여자로서 나와 함께 온 박과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어밀담들은 그만 하시고()선생인사해요내 중학 동창인 윤희중이라는 친굽니다서울에 있는 큰 제약회사의 간사님이시고 이쪽은 우리 모교에 와 계시는 음악 선생님이시고하인숙씨라고작년에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나오신 분이지."

 

 "그러세요같은 학교에 계시는군요."

 

 나는 박과 그 여선생을 번갈아 가리키며 여선생에게 말했다.

 

 "."

 

 여선생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고 내 후배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고향이 무진이신가요?"

 

 "아녜요발령이 이곳으로 났기 땜에 저 혼자 와 있는 거예요." 그 여자는 개성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윤곽은 갸름했고 눈이 컸고 얼굴 색은 노리끼리했다

 

전체로 보아서 병약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좀 높은 콧날과 두꺼운 입술이 병약하다는 인상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있었다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코와 입이 주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었다.

 

 "전공이 무엇이었던가요?"

 

 "성악 공부 좀 했어요."

 

 "그렇지만 하선생님은 피아노도 아주 잘 치십니다." 박이 곁에서 조심스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조도 거들었다.

 

 "노래를 아주 잘하시지소프라노가 굉장하시거든." "소프라노를 맡으시는 가요?"

 

 내가 물었다.

 

 "졸업 연주회 땐 <</font>나비부인중에서 <</font>어떤 개인 >을 불렀어요."

 

 그 여자는 졸업 연주회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방바닥에는 비단의 방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화투짝이 흩어져 있었다무진(霧津)이다곧 입술을 태울 듯이 불타 들어가는 담배 꽁초를 입에 물고 눈으로 들어오는 그 담배 연기 때문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이미 정오가 가까운 시각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날의 허황한 운수를 점쳐 보던 화투짝이었다혹은자신을 팽개치듯이 기어들던 언젠가의 놀음판그 놀음판에서 나의 뜨거워져가는 머리와 떨리는 손가락만을 제외하곤 내 몸을 전연 느끼지 못하게 만들던 그 화투짝이었다

 

 "화투가 있군화투가."

 

 나는 한 장을 집어서 소리가 나게 내려치고 다시 그것을 집어서 내려치고 또 집어서 내려치고 하며 중얼거렸다.

 

 "우리 돈내기 한판 하실 까요?"

 

 세무서 직원 중의 하나가 내게 말했다나는 싫었다.

 

 "다음 기회에 하지요."

 

 세무서 직원들은 싱글싱글 웃었다조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잠시 후에 술상이 나왔다.

 

 "여기엔 얼마쯤 있게 되나?"

 

 "일주일 가량."

 

 "청첩장 한 장 없이 결혼해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하기야 청첩장 을 보냈더라도 그땐 내가 세무서에서 주판알 튕기고 있을 때니까 별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난 그랬지만 청첩장 보내야 한다."

 

 "염려 마라금년 안으로는 받아 볼 수 있게 될 거다."

 

 우리는 별로 거품이 일지 않는 맥주를 마셨다.

 

 "제약회사라면 그게 약 만드는 데 아닙니까?"

 

 "그렇죠."

 

 "평생 병걸릴 염려는 없겠습니다그려."

 

 굉장히 우스운 익살을 부렸다는 듯이 직원들은 방바닥을 치며 오랫동안 웃었다

 

 "참 박군(朴君), 학생들한테서 인기가 대단하더구먼……기껏 오분쯤 걸어오면 될 거리에 살면서 나한테 왜 통 놀러 오지 않았나?"

 

 "늘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저기 앉아 계시는 하선생님한테서 자네 얘긴 늘 듣고 있었지…자하선생 맥주는 술도 아니니까 한잔 들어봐요평소엔 그렇지도 않던데 오늘 저녁엔 왜 이렇게 얌전을 피우실까?"

 

 "네 거기 놓으세요제가 마시겠어요."

 

 "맥주는 좀 마셔 봤지요?"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려서 방문을 안으로 잠가 놓고 소주도 마셔본걸요." "이거 술꾼인 줄은 몰랐는데."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게 아니라 시험삼아서 맛 좀 본 거예요." "그래서 맛이 어떻습디까?"

 

 "모르겠어요술잔을 입에서 떼자마자 쿨쿨 자버렸으니까요." 사람들이 웃었다박만이 억지로 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내가 항상 생각하는 바지만하선생님의 좋은 점을 바로 저기에 있거든될 수 있으면 얘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한다는 바로 그거야."

 

 "일부러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게 아녜요대학 다닐 때의 말버릇이에요." "아하그러고 보면 하선생의 나쁜 점은 바로 저기 있어<</font>내가 대학 다닐 라는 말을 빼 놓곤 얘기가 안됩니까나처럼 대학엔 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럼 내게 사과하는 뜻에서 노래 한 곡 들려주시겠어요?" "그거 좋습니다."

 

 "좋지요."

 

 "한번 들어봅시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여선생은 머뭇거렸다.

 

 "서울 손님도 오고 했으니까…그 지난번에 부르던 거 참 좋습디다." 조는 재촉했다.

 

 "그럼 부릅니다."

 

 여선생은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조금만 달싹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세무서 직원들이 손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여선생은 <</font>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있었다<</font>어떤 개 인 >과 <</font>목포의 눈물>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유사성이 있을까무엇이 저 아리아들로써 길들여진 성대에서 유행가를 나오게 하고 있을까그 여자가 부르는 <</font>목포의 눈물>에는 작부(酌婦)들이 부르는 그것에서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꺾임이 없었고대체로 유행가를 살려주는 목소리의 갈라짐이 없었고흔히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이 없었다그 여자의 <</font>목포의 눈물>은 이미 유행가가 아니었다그렇다고 <</font>나비부인중의 아리아는 더욱 아니었다그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양식의 노래였다그 양식은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과는 다른 좀더 무자비한 청승맞음을 포함하고 있었고<</font>어떤 개인 >의 그 절규보다도 훨씬 높은 옥타브의 절규를 포함하고 있었고그 양식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狂女)의 냉소가 스며 있었고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 가는 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며 있었다.

 

 그 여자의 노래가 끝나자 나는 의식적으로 바보 같은 웃음을 띠우고 박수를 쳤고 그리고 육감(六 )으로써랄까나는 후배인 박이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나의 시선이 박에게로 갔을 나의 시선을 박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지가 그에게 앉아 있기를 권했으나 박은 해사한 웃음을 띠우며 거절했다

 

 "먼저 실례합니다형님은 내일 또 뵙지요."

 

 조는 대문까지 따라나왔고 나는 한길까지 박을 바래다주려고 나갔다밤이 깊지 않았는데도 거리는 적막했다어디선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쥐 몇 마리가 한 길 위에서 무엇을 먹고 있다가 우리의 그림자에 놀라 흩어져버렸다

 

 "형님보세요안개가 내리는군요."

 

 과연 한길의 저 끝이불빛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먼 주택지의 검은 풍경들이 점점 풀어져 가고 있었다.

 

 "자네하선생을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군."

 

 내가 물었다박은 다시 해사한 웃음을 띠었다.

 

 "그 여선생과 조군(趙君)과 무슨 관계가 있는 모양이지?"

 

 "모르겠습니다아마 조형이 결혼 대상자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요." 

 

"자네가 그 여선생을 좋아한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잘 해봐."

 

 "뭐 별로…."

 

 박은 소년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그 속물들 틈에 앉아서 유행가를 부르고 있는 게 좀 딱해 보였을 뿐이지요그래서 나와 버린 거죠."

 

 박은 분노를 누르고 있는 듯이 나직나직 말했다.

 

 "크래식을 부를 장소가 있고 유행가를 부를 장소가 따로 있다는 것뿐이겠지뭐 딱할 거까지 야 있나?"

 

 나는 거짓말로써 그를 위로했다박은 가고 나는 다시 <</font>속물>들 틈에 끼었다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無爲)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밤이 퍽 깊어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조는 내가 자기 집에서 자고 가기를 권했다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집을 나올 때까지의 부자유스러움을 생각하고 나는 기어코 밖으로 나섰다직원들도 도중에서 흩어져 가고 결국엔 나와 여자만이 남았다우리는 다리를 건너 고 있었다검은 풍경 속에서 냇물은 하얀 모습으로 뻗어 있었고 그 하얀 모습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밤엔 정말 멋있는 고장이에요." 

 

 여자가 말했다.

 

 "그래요다행입니다." 

 

 내가 말했다.

 

 "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 줄 짐작하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어느 정도까지 짐작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사실은 멋이 없는 고장이니까요제 대답이 맞았어요?" "거의."

 

 우리는 다리를 다 건넜다거리서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그 여자는 냇물을 따라서 뻗어 나간 길 로 가야 했고 나는 곧장 난 길로 가야 했다.

 

 "글루 가세요그럼…."

 

 내가 말했다.

 

 "조금만 바래다주세요이 길은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요." 여자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다시 여자와 나란히 서서 걸었다나는 갑자기 이 여자와 친해진 것 같았다다리가 끝나는 바로 거기에서부터그 여자가 정말 무서워서 떠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바래다 주기를 청했던 바로 그때부터 나는 그 여자가 내 생애 속에 끼어든 것을 느꼈다내 모든 친구들처럼이제는 모른다고 할 수 없는때로는 내가 그들을 훼손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더욱 많이 그들이 나를 훼손시켰던 내 모든 친구들처럼.

 

 "처음에 뵈었을 뭐랄까요서울냄새가 난다고 할까요퍽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어요참 이상하죠?"

 

 갑자기 여자가 말했다.

 

 "유행가."

 

 내가 말했다.

 

 "?"

 

 "아니 유행가는 왜 부르십니까성악 공부한 사람들은 될 수 있는대로 유행가를 멀리하지 않았던가요?"

 

 "그 사람들은 항상 유행가만 부르라고 하거든요."

 

 대답하고 나서 여자는 부끄러운 듯이 나지막하게 소리내어 웃었다.

 

 "유행가를 부르지 않을려면 거기에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얘기하면 내정간섭이 될까요?" 

 

 "정말 앞으론 가지 않을 작정이에요정말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에요." 

 

 "그럼 왜 여태까진 거기에 놀러 다녔습니까?"

 

 "심심해서요."

 

 여자는 힘없이 말했다심심하다그래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아까 박군은 하선생님께서 유행가를 부르고 계시는 게 보기에 딱하다고 하면서 나가 버렸지요."

 

 나는 어둠속에서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박선생님은 정말 꽁생원이에요."

 

 여자는 유쾌한 듯이 높은 소리로 웃었다.

 

 "선량한 사람이죠."

 

 내가 말했다.

 

 "너무 선량해요."

 

 "박군이 하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가요?"   "아이<</font>하선생님 하선생님하지 마세요오빠라고 해도 제 큰 오빠뻘이나 되실 텐데요." "그럼 무어라고 부릅니까?"

 

 "그냥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인숙이라고요."

 

 "인숙이 인숙이."

 

 나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려보았다.

 

 "그게 좋군요."

 

 나는 말했다.

 

 "인숙인 왜 내 질문을 피하지요?"

 

 "무슨 질문을 하셨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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